언제 오려나 싶던 그날이 왔다. 곧 또 돌아오는 날도 오겠지.
작은 설레임과 불안을 가지고 떠나는 혼자 가는 첫 해외여행.
이렇게 조금씩 변화하는 일은 슬그머니 내 앞에 놓이곤 한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준비되어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나를 공항까지 배웅할까말까 고민하다가 모임에 갔고 아빠는 오늘따라 운동 갔다가 일찍 돌아왔다. 집 열쇠는 두고 나왔다. 나는 거기로 돌아가겠지. 무사히 돌아간다면. 겨우 터전을 20일 떠나있을 뿐인데 안위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 '내 나라'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다. 내가 그나마 안심하고 사는 유일한 이 땅이 좆같지 않도록 난 뭘하며 살아야 할까 그런 생각도 든다. 그냥 여행인데. 가볍게 즐기지 못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진지빠는 게 우습지만 난 이런 부분의 감정을 적는 게 다른 표현보다는 쉬운 인간인 것 같다. 즐겁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비장해지기도 하는 많은 감정이 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이 마음을 글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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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마지막 식사일 수도 있다는 생각. 그래서 더 맛있게 먹자고 생각한다.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함께 있었던 불안. 늘 내 곁에서 기회만 노리고 있는 그 불안. 최악의 상황을 늘 생각하며 사는 나.
콰트로치즈버거가 엉겨서 뚝뚝 떨어지는 걸 부여잡고 먹으면서 문득 드는 생각.
그래 뭐. 불안도 같이 간다. 곧이어 나오는 질끈 감아버리는 두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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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너무 일찍 왔다. 1시간이나 남았다. 괜히 가방을 정리했다. 면세점에서 산 선글라스와 선크림을 집어넣으니 가방이 더 터질 것같다. 114번 게이트 앞 벤치에는 돼지코가 있다. 돼지코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단어가 생각이 안났다. 지금 생각났다. 플러그. 돼지코라는 말이 싫은 건 돼지가 어떻고 그래서가 아니라 뭔가 거저먹는 말같기 때문이다. 처음엔 재치있다고 시작된 말이었을 텐데 이제 너무 오래되어 오히려 촌스러운 말. 블로그하는 남자들이 외워서 쓰는 말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약간은 돼지코에다가 뭔가를 꽂아넣는 일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 쓰는 말같기 때문에 싫기도 하다.
동생에게 전화왔다. 잘 다녀오라는 말을 내가 아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들었다. 나도 좀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