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에서 나이쏘이를 찾아가려고 쭉 내려가다 오른쪽을 보니 어딘가 낯익은 길. 나도 모르게 이끌리듯 들어가니 바로 거기가 2008년 이맘때 내가 매일 걷던 바로 그 길이었다. 천천히 산책하듯, 함께였던 사람을 떠올리며 걸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없어졌지만. 그리고 나같은 길치가 지도도 내려놓고 발이 이끄는대로 걸었더니 눈앞에 나이쏘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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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붕 커피의 맛은 맥심도 아닌 맥스웰 아이스커피믹스 맛. 자뎅 믹스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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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을 걷는데 문득 다 떠올랐다. 이 여행사를 지날 때, 누구는 일주일동안 여기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땄대. 진짜? 응. 우리도 다음에 오면 꼭 그거 하자. 그래그래.
그때 딱히 사이좋던 시기도 아니었는데 그래그래 우리 다음에는, 그랬지. 치밀어오르는 이상한 감정이 있다. 사람도 내가 살아온 시간도 그때의 방식도 다 지나갔지만 괜찮다. 난 지금 누군가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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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 고되다.
선택의 연속.
여행도 일상과 다를 것 없는 나.
오히려 더 피곤할 수도.
난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운 몸.
그래서 선택지가 많고
그게 너무 고되다.
일일이 다 선택.
방도 밥도 갈곳도 할일도
쉴새없이 선택해야 하는데
방은 천개 맛집은 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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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면서 늘 생각한 게 짐이었다.
짐 스트레스.
물건이 하나 늘 때마다 당장의 무게와 기내수화물 10kg 제한을 고민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태국 세탁소에 맡긴 티셔츠들이 다 늘어져서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나름 좋아하는 티셔츠였는데. 작년 이맘때 산..
물건을 버리는 것도 연습했다. 남은 세면도구를 다 버렸다. 역시 짐 무게 때문이었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남은 걸 버린다는 아까움과 해방감이 함께 느껴졌다. 운동화도 버렸다. 지난 일년간 '데일리'로 신고다닌 편하고 촌스러운 아식스 러닝화. 뒷축의 스펀지가 다 뜯어져서 버릴만도 했지만 버려지는 곳이 태국이라는 것은 이상했다. 내가 태국에 운동화를 버렸구나. 짐을 줄이기 위해. 나에게 뭘 버린다는 게 흔한 일이 아니라 이 모든 게 신기하다. 다음 여행엔 작은 배낭에 티 하나 바지 하나 속옷 하나, 세면도구만 넣고 올 것이다.
외로움과 애인 구함을 데려간다. 그게 한국까지 얌전히 있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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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가서 내 삶 만들어야지.
하고 싶은 거 해야지.
태국 여행 끝.